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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다 육군 장학생/3사 진출,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까지도 보살피는 책임교육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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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5 16:45
역사에 대한 주체성(主體性) 3
 글쓴이 : 방공유도무기과
조회 : 1,386  

가륵성조께서는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제정케 하셨는데 이 문자를 일러 가림토라고 하였습니다.


(가림토 문자) 

후일 세종대왕께서는 이 가림토 문자 38자를 참고하여 훈민정음으로 체계를 갖추시었으며 지금의 우리는 훈민정음 28중 사용하기에 불편한 4자는 빼 버리고 한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림토문자는 세종대왕보다 앞서서 살으셨던 고려말 때의 학자인 이암선생께서 쓰신 단군세기라고 하는 책에 나타나 있는 글자인 것이므로 훈민정음은 가림토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역력히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들이 목구멍 모양, 입술 모양, 잇발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가르친 일제의 조작을 지금까지도 마냥 신봉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국의 22번째 임금은 색불루단군이십니다.

색불루단군께서는 초대 임금인 왕검께서 정하신 3한의 제도를 고치시어 진한진조선으로 하여 직접 다스리시고 마한막 조선여원흥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으며 번한번 조선서우여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번 조선을 다스린 서우여서여또는 기자(奇子)‘라고도 불리웠기 때문에 번 조선을 흔히 기자 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고증: 단기고사). 이러한 기자조선3번째 임금은 솔귀기자로서 솔귀기자 45년에는 은나라의 끝왕인 의 친척인 기자(箕子)가 은나라를 멸망 시켜버린 주나라의 신하가 될 마음이 없어 기자조선에 망명하였으므로 솔귀기자께서는 그를 기자조선의 변방인 요서지방에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기자조선의 끝 왕인 74기준기자 때, 중국의 연 나라 사람인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함으로서 기자조선번조선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BC 146).

이러한 기자조선(번 조선)‘의 기자(奇子)와 중국(은나라)에서 온 기자(箕子)의 발음이 비슷함을 기화로 하여, 중국인이 조선국의 영토 전부를 말아먹은 것처럼 조작하였던 것인데, 이와 같은 역사의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왜곡된 역사만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왔던 것이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단군의 끝 임금은 47대의 고열가단군이십니다.

고열가단군 재위 57년 되던 해에는 해모수‘(동이족으로서 고리국 사람임)께서 웅심산에서 병()을 일으키니 고열가단군께서는 국운이 이미 쇠한 줄을 아시고는 이듬해인 BC 238년에 제위를 버리고 입산 수도에 들어가게 됨으로서 조선국은 2,096년 만에 대 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해모수께서 일으키신 북 부여로 그 정통성을 이어가게 되었던 것이며, 북부여의 건국은 BC 23948(음력) 이었습니다(북부여기: 범장).

이것이 바로 단군조선의 올바른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두고 곰의 자손운운하면서 단군 혼자서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기자한테 나라를 빼앗겼다고만 해왔던 것이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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