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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5 16:43
역사에 대한 주체성(主體性) 1
 글쓴이 : 방공유도무기과
조회 : 1,003  

역사에 대한 주체성(主體性)

 

한국인의 주체성 

누군가가 당신에게 원숭이를 닮았다고 말했다면 그때의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으려고 하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뭐야? 내가 짐승을 닮았다고?”하면서 눈에는 쌍심지를 켜면서 또한 소매는 걷어 부치면서 당장이라도 대들려고 하지는 않겠습니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듯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 태연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설혹 그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겉마음이 태연해 하는 것처럼 속마음까지 태연할 수는 없을 것인데, 그것은 누구이든 간에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바로 개인의 자존심인 것인데, 항차 가문에 대한 자존심은 어떠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민족 전체에 이르는 자존심은 또 어떠할 것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자존심이 형편없이 무시되고 있음에도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태연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단군신화의 이야기입니다.

 

단군신화 

단군신화에 의하면, 옛적에 사람되기를 원하는 곰 한 마리가 굴속에서 21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도()를 닦은 결과 여자가 되었다고 하며, 여자가 된 곰은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단군신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단군의 어머니가 비록 사람으로 변신하기는 하였다고는 하나 그 근본은 어엿한 곰이었던 것이니 그와 같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곰의 자식 곧 짐승의 자식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짐승의 자식을 더욱 비하시킨다면 그것은 곧 짐승새끼가 되고 말 것인데, 우리 한민족의 국조인 단군께서 이처럼 짐승새끼노릇을 하여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요?

 

만약 단군께서 짐승새끼라고 말한다면 배달의 혈통을 지녀오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치고 단군의 후예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니 한국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짐승새끼가 되고 말 것인데, 한국인 모두가 이처럼 짐승새끼노릇을 하여도 괜찮다는 것입니까?

이와 같은 이야기에 대하여 짐승 새끼가 아니기만 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사람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사람에게 당신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짐승 새끼다고 부모와 조상까지 들먹였다면 그때에도 태연히 웃어 넘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군신화의 이야기는 오랜 옛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여 단군신화의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향하여 짐승운운하는 것도 듣기 거북한 말일 것인데 한국인들은 무엇이 아쉬워 스스로 나서면서 우리는 모두 짐승의 자손이다라고 말할 것은 또 무엇입니까?

한국인은 자존심도 없는 것입니까?

 

단군신화는 알게 모르게 한국인 모두에게 깊은 모멸감을 안겨주어 왔건만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그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금도 강단에서는 열심히 단군신화를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배워온 사람들은 신주단지처럼 그것을 외워대고 있는 것이니 우리의 한국인들은 언제쯤 짐승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까?

이 세상에는 생명의 창조과정에 대하여 진리라고 자처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창조론과 진화론입니다.

 

창조론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신()이 직접 손수 땀 흘려가며 만들어 냈다고 하며, 진화론은 미생물에서부터 시작하여 짐승이 되었고 이와 같은 짐승은 더욱 진화 발전하여 오늘의 사람으로 변화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양론(兩論)은 오늘날까지도 서로 옳거니 그르거니 하면서 티격태격을 거듭하고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 짐승으로서 느닷없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하는 우리의 단군신화는 어느 쪽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창조론입니까? 아니면 진화론입니까?

그러나 단군신화는 이와 같은 양론 중, 어느 쪽에도 끼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단군신화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처럼 도력이 높은 사람이 독수리나 소 또는 말로 변신했다는 것과 같은 둔갑(遁甲)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둔갑론진화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돌연변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만 돌연변이는 아무런 목적이나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우연히이루어지는 데 반하여 둔갑론은 목적과 수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양자는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단군신화 즉 둔갑론이 근거있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둔갑(遁甲)이라는 학설이 마땅히 존재하고 있어야 만 할 것인데, 사람들은 그와 같은 학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니 때늦기는 하였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둔갑론을 학계에 보고하여 단군신화를 공인 받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용기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와 같은 둔갑론을 발표하였다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그와 같은 둔갑론을 믿으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를 창조해 내신 우주의 절대권자와 같은 분이라면 모를까 사람도 아닌 짐승으로서 그것도 지혜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서 미련한 짐승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고 있는 곰()이 그와 같은 둔갑을 해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려고 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곰의 둔갑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단군신화야말로 말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낸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는 것이므로 단군신화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없어져야 만 마땅할 것인데도 무엇이 그처럼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지금도 교과서는 버젓히 기술하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해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요?

 

민족 

민족은 같은 생활과 환경속에서 고유한 습관과 전통을 이루기도 하고 공통의 문화를 창출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지는 것이므로 민족은 모두 동질성을 견지하게 마련입니다.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지구상에는 민족들이 무수하게 난립하여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민족들은 각기 다른 기후와 풍토 또는 사회여건 속에서 성장되어지기 때문에 각 민족들은 서로 다른 특이한 개성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민족인 것이므로 세계의 각 민족은 각기의 독자적인 특이성을 지니고 있게 마련인 것이며, 민족은 또한 조상 대대로 흘러 내려온 역사(歷史)의 수레바퀴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완성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의 이면에는 반드시 역사성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과 역사는 서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역사와 민족은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린 세계의 열강들은 약소국을 참탈하려고 할 때에는 으례히 민족성을 말살시키려고 하였으며, 민족성의 말살은 약소국이 지녀오고 있던 역사를 말살시키는 데서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열강들은 항상 역사의 말살정책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민족은 있게 마련이며 민족이 있는 한, 그것이 구심점을 이루면서 민족성을 회복하여 자주독립을 이루려고 할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우리 민족도 뼈저리게 경험했었던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세계는 하나다라고 하면서 민족의 개념에 대하여 흔히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띄워가고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민족이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체이기는 하지만 민족의 이면(裏面) 즉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각기의 개성과 본성이 다른 사람들의 집단인 것처럼 지구촌이라는 것도 특이성을 달리하는 민족들의 집단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십시오

오케스트라는 특이한 개성을 지닌 악기들이 모여들어 조화(造化)된 질서속에서 제 각각 고유한 개성을 표현함으로서 화합된 음악을 창조해내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오케스트라의 경우처럼, 가정이 각기 다른 품성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체인 것처럼, ‘세계 일가(一家)‘라는 것도 개성이 서로 다른 민족의 집단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의 속성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세계성은 지향하면 할수록 민족성은 그만큼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만 하면 그것은 스스로를 고립화시키는 일이라고 하거나 그것은 또한 폐쇄주의‘, ‘국수주의라고 하면서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잘못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민족문제는 가정의 문제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의 일각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일하다가도 일과가 끝나기 만 하면 모두 자기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마련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기실은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가정과 사회와의 관계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상보(相補)적인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가정을 위하여 사회는 존재할 수는 있지만 사회를 위하여 가정이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정보다는 사회를 더 위하는 사람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집을 무시로 출입하면서 감 내놔라 팥 내놔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아갈 재주를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가정과 사회와의 관계인 것이며, 이러한 가정과 사회를 크게 확대한다면 민족과 세계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므로 가정의 경우와 같은 소속(所屬)의 문제를 부정할 수 없는 한 민족의 문제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을 들어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여 보십시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젠의 항쟁도, 내몽고외몽고가 독립의 기치를 높이 외치고 있는 것도 민족의 문제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끝없는 분쟁도,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독일의 문제도, 쿠르드족이 이라크, 이란, 터키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 외로운 저항을 벌이고 있는 것도 모두 민족의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통일을 염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인데, 이와 같은 통일은 기독교, 불교, 유교와 같은 종교의 이념으로 또한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적인 이념으로 이루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는 모두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열병을 앓고 있는데, 우리만 가만히 앉아서 폐쇄주의‘, ‘국수주의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세계의 조소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단기로만 치더라도 4,333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민족으로만 치더라도 수 천년 동안을 오로지 단일민족으로서 외골스럽게 그 전통을 지켜온 나라인 것인데, 이러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민족을 모르고 민족의 근원을 이루어 온 역사를 모른 채 지낸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굴을 들 수 없는 수치일 것이요, 그것은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歷史)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모르고 있거나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를 당하여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펼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혹 청사진을 그려보았을지라도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상이 이루어왔던 역사를 모르고 있는 민족은 민족의 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며 그와 같은 민족은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젼을 결코 제시하여 주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민족의 족적을 알기는 하지만 그 내용이 왜곡(歪曲)된 것이라고 한다면 민족의 현실은 왜곡으로 나타나게 마련일 것이며, 왜곡된 민족의 앞날에 펼쳐질 미래 또한 왜곡으로 나타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의 정신이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유수한 민족들은 교육의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과목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의 역사를 진실되고 올바르게 가르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중고등학교의 과정을 통하여 1주당 12시간 정도가 할애되고 있을 뿐인데, 그나마 가르치고 있는 내용도 일제 때 조작되고 찢겨진 역사만을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역사의 목적이 주체성의 함양에 있건만 그와 같은 목적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시험을 위한 암기 교육으로 만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어떤 나라가 우리는 짐승 새끼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배워온 그동안의 역사는 민족자존의 정수를 알려주지 못하였고, 또한 주체성에 입각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못한 채, 일제의 식민지시대 때 대부분 날조되었던 왜곡된 역사만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이처럼 구겨지고 빛 바랜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정기는 언제쯤 바르게 되찾아질 수 있을 것입니까?